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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Movie & TV Series

소주가 나오는 영화/TV : 이태원클라쓰, 내 머릿속의 지우개

주말 내내 비가 많이 내렸습니다. 비가 오면 약간 쌀쌀하게 느껴져서 그런지 따끈한 국물이 생각납니다. 동시에 차가운 소주 한 잔 생각도 떠오릅니다. 워낙 많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빗소리와 함께 마시는 소주 장면이 많이 나와서 의도치 않게 학습된 취향이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며칠 전에는 맥주를 주제로 포스팅을 올렸는데 오늘은 소주를 주제로 포스팅을 하니 갑자기 제가 애주가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오늘은 소주가 등장하는 영화와 드라마 한 편씩을 소개해보겠습니다.

 

1. 술 맛이 어떠냐 - 이태원 클라쓰 [Jtbc, Itaewon Class, 2020]

사실 이태원 클라스를 매우 뒤늦게 봤습니다. 바로 며칠전에 말이죠. 동명의 웹툰 원작 덕에 방영 당시에도 인기가 꽤 많았을 것 같은 드라마였습니다. 결말 부분이 다소 아쉬웠지만 전체적으로는 재미있었고, 몰입해서 볼 수 있었습니다. 흔히 말하는 '바른생활' 청년인 박새로이(박서준 분)는 아버지(손현주 분)와 단 둘이 살지만 그만큼 아버지와의 사이가 매우 친밀합니다. 새로 전학 간 학교에서 첫 날 마주한 광경은 교실 안에서 힘없는 급우를 괴롭히는 재벌집 아들 장근원(안보현 분)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같은 반 학생 중 그 누구도 이러한 괴롭힘을 저지하려 들지 않고 이 모든 것을 목도하면서도 어떠한 훈계도 못하는 교사의 모습에 분노한 새로이는 장근원에게 결국 주먹을 날리게 되고 이로 인해 퇴학처분을 받게 됩니다. 퇴학 처분을 받은 새로이를 아버지가 데려간 곳은 한 술집이었고 이제 더이상은 학생이 아닌 새로이에게 아버지는 술을 따르는 법과 마실 때의 자세 등을 가르쳐 줍니다.

아버지 : 술 맛이 어떠냐?
새로이 : 달아요.
아버지 : (웃음을 터뜨리며) 오늘 하루가 인상적이었다는 거야. 
새로이 : 이제 학생은 아니지만 그래도 미성년자인데 이런거를 가르쳐도 돼요?
아버지 : 원래 술은 아버지한테 배우는 거야. (술을 마신 후에) 나도 달구나.

이 후 재벌집 아들이 저지른 뺑소니 사고로 인해 주인공의 아버지는 결국 사망하게 되고, 이 모든 것을 알게 된 주인공은 재벌집과 그 아들에 대한 복수를 다짐합니다. 복수를 위해 조금씩 계획을 실행하던 주인공이 혼자 소주를 마실 때마다 아버지는 환영처럼 나타나 술 맛이 어떤지를 물어보고 주인공은 그때마다 쓰다고 대답합니다. 마침내 주인공이 세운 목표를 모두 이루었을 때 다시 아버지는 술 맛이 어떤지를 물어보고 대답없이 행복하게 미소짓는 주인공의 얼굴이 클로즈업되며 드라마는 끝이 납니다. 이 드라마에서 소주는 아버지를 향한 끝없는 그리움, 주변에 자신의 힘든 마음을 잘 내비치치 않는 주인공의 솔직한 감정을 드러내주는 장치로 활용됩니다. 복수를 진행하는 동안 겪게 되는 고난과 이를 헤쳐나가는 과정에서 생기는 상처들과 외로움의 표현을 아버지와의 대화를 통해 보여주면서 주인공의 감정에 더욱 깊이 빠져들 수 있었습니다.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

2. 이거 마시면 우리 사귀는 거다. - 내 머릿속의 지우개 [이재한 감독, A moment to remember, 2004]

한국 로맨스 영화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이 영화는 개봉한 지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회자되는 작품입니다. 특히나 저 위에 써놓은 대사는 너무나 유명합니다. 여주인공 수진(손예진 분)과 포장마차에서 술자리를 갖던 중 철수(정우성 분)는 수진에게 소주를 한 잔 가득히 따라주며 "이거 마시면 우리 사귀는거다." 라고 선언합니다. 안 마시면 죽어도 볼 일 없다는 철수의 말에 수진은 철수의 눈을 바라보면서 소주를 모두 마셨고, 소주를 다 마신 수진에게 철수는 키스합니다. 이 장면과 대사는 많은 여성 관객들의 탄성을 자아냈고, 이후에도 많은 예능에서 패러디될 정도로 유명해졌습니다. 이 영화는 소주를 마시는 장면이 많이 나오지는 않지만 앞서 비빔밥 편에서 소개해드렸던 '내 이름은 김삼순' 드라마와 같은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소주 하면 떠오르는 드라마나 영화의 사례 중 대표적인 장면이 된 셈입니다. 이 영화에서 여주인공은 젊은 나이지만 알츠하이머에 걸리게 되는데 여주인공의 상태에 대한 암시는 영화의 초반부터 나온 듯 합니다. 수진은 편의점에서 구매한 콜라를 깜빡하면서 철수와 얽히게 되는데 이때 이미 증세가 시작되고 있었던 걸로 보입니다. 영화에서 수진은 초반에 그저 건망증이 심한 정도로만 보였으나 사실 이 모든 것이 그녀가 걸린 병 때문이었던 것이고 불행히도 그녀의 병은 점점 심해져 갑니다. 이 영화에서 기억에 남는 다른 장면들도 많이 있지만 저는 병세가 심해진 수진이 식구들 앞에서 소변이 흐르는 것도 모른채 서 있는 장면에서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외에도 요양원에 입원한 수진이 철수를 못 알아보자 철수가 처음 만난 것처럼 자신을 소개하는 장면과 두 사람이 처음 만나게 된 장소인 편의점에서 수진의 주변인들이 모두 직원으로 분장해 수진의 기억을 되살려주려 하는 장면도 마음이 아팠습니다. 슬픈 내용이라서 그런지 몇 번이고 볼 때마다 항상 눈물이 나는 영화였습니다.

영화 내머리속의 지우개

3. 마치며

특정 주류회사가 지금까지 판매한 소주병을 일렬로 세우면 지구를 100 바퀴 이상 돌 수 있을 정도라고 합니다. 그만큼 소주는 한국인의 아낌없는 사랑을 받은 술이 아닐까 합니다. 주머니가 가벼운 서민들도 부담없이 사먹을 수 있는 가격이었기에 검은 비닐 봉투에 담긴 소주병은 소시민의 삶을 표현하는 하나의 클리셰가 되었고, 영화나 드라마에서 나오는 다양한 식사자리에서도 소주는 단골 손님으로 등장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무언가 깊은 마음의 고민이나 솔직한 이야기를 터놓고 싶은 자리를 만들 때 소주 한 잔 할까 라는 말로 자연스럽게 상황을 이끌곤 합니다. 가격적인 측면을 떠나 왠지 보다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에는 아무래도 맥주보다는 소주가 더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이처럼 소주는 단순한 술을 넘어 사람간의 연결을 상징하는 매개체로서의 역할이 더 큰 듯 합니다. 글을 쓰는 동안 비가 그치고 날이 개었으니 따끈한 국물 대신 오늘은 가족과 같이 삼겹살에 소주를 곁들인 저녁을 먹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