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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Movie & TV Series

떡볶이가 나오는 영화/TV : 말죽거리 잔혹사, 응답하라 1988

저는 떡에 대한 선호도가 높지 않은 편입니다. 다양한 떡들을 보았을 때는 예쁘고, 맛나 보이고 하지만 제 간식으로 떡을 사먹는 경우는 거의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같은 떡이지만 단지 조리법이 달라서 그런것인지 떡볶이는 너무 좋아합니다. 특히 밀떡볶이를 좋아하는데 몇년전까지도 떡볶이라고 하면 대부분 쌀떡볶이라서 속으로 늘 불만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새는 저처럼 밀떡볶이를 선호하는 사람이 많은지 마트 진열장에서도 심심치않게 밀떡볶이 키트를 볼 수 있어서 볼 때마다 괜시리 흐뭇합니다. 오늘은 분식의 대표메뉴인 떡볶이가 등장하는 영화와 TV 드라마 각각 한 편을 소개합니다.

 

1. 니가 그렇게 싸움을 잘 해? 옥상으로 따라와! - 말죽거리 잔혹사 [유하 감독, Once upon a time in high school, 2004]

1978년 말죽거리의 봄을 배경으로 까만 교복과 모자, 까만 책가방으로 대표되는 고등학생들의 이야기를 담은 말죽거리 잔혹사에는 떡볶이집이 자주 등장합니다. 떡볶이는 학생들이 가장 즐겨먹는 대표적인 분식 메뉴이기도 하지만 이 영화에서 떡볶이집은 주인공인 현수(권상우 분)와 은주(한가인 분)가 버스안에서의 우연한 만남 이후 친해지게 되는 장소이자 떡볶이집 주인(김부선 분)이 한창 피끓는 시기인 고등학생 현수를 유혹하는 장소로 등장합니다. 이소룡을 동경하여 절권도의 동작들과 쌍절곤을 휘두르며 아직은 이성에 대해 쑥맥에 가까울 정도로 순진한 현수에게 있어 이 떡볶이집은 이성과의 연결을 상징하는 듯 합니다. 학교 앞 분식집이지만 맥주도 같이 파는 떡볶이집에서 일부러 가슴골이 드러나는 옷을 입고 학생들에게 눈웃음을 치는 떡볶이집 주인 아줌마는 한창 혈기왕성한 학생들의 눈빛을 은근히 즐기면서 착하고 순수한 현수를 눈여겨 봅니다. 그러던 어느 늦은 밤, 현수가 떡볶이를 먹으러 혼자 오자 아줌마는 이미 영업을 마쳤음에도 떡볶이를 해주고 아직 학생인 현수의 앞에 앉아서 맥주도 권합니다. 현수의 고민상담을 들어주던 아줌마는 노골적으로 현수를 유혹하다가 실패하죠. 이 영화에서는 앞서 곶감 편에서 소개했던 드라마 '시그널'의 조진웅 배우가 단역으로 잠깐 등장하기도 합니다. 또한 단정하게 양갈래로 머리를 땋아내린 한가인은 모범생 모습 그 자체로 영화를 본 많은 관객들을 설레게 하기 충분했습니다.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

2. 나빴던 건 신호등이 아니라 타이밍이 아니라 내 수많은 망설임들이었다. - 응답하라 1988 [tvN, Reply 1988, 2015]

응답하라 시리즈 중에 가장 마지막에 방영된 응답하라 1988 은 앞서 방영된 두 편의 드라마와 달리 가족에 중심이 맞춰진 드라마였기에 유독 가족과 관련된 가슴을 울리는 대사들이 많았습니다. 또한 전작들처럼 주인공의 남편이 누구인지를 맞춰보는 재미도 있었습니다. 이 드라마에서 여주인공 덕선이(이혜리 분)는 늘 뭉쳐다니던 친구들과 함께 분식집 '브라질 떡볶이' 를 자주 갑니다. 삼총사마냥 붙어다니던 세 친구들 중 미옥(이민지 분)이 미국으로 유학을 가면서 삼총사는 생이별을 맞이하지만 몇 년 후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미옥과 남아있던 두 친구들이 다시 재회하는 장소가 브라질 떡볶이 집입니다. 당시에는 학생들이 갈 수 있는 카페나 커피숍이 드물기도 했지만 셋의 추억이 담긴 장소였기 때문에 재회의 장소로 떡볶이 집만한 곳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극 중 브라질 떡볶이집도 시간이 흐른 만큼 내부가 변했지만 세 친구의 우정은 변하지 않은 채 고등학생 시절의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는 듯 합니다. 그간 전화 한 통 없었던 것에 대한 서운함을 토로하는 친구들에게 미옥은 "사진만 봐도 눈물이 앞을 가리는데 목소리 들으면 한국에 너무 오고 싶을까봐 못했다." 는 말로 모두를 펑펑 울립니다. 그 외에도 드라마 중간중간 떡볶이집은 종종 등장하는데 이 드라마의 공간적 배경인 쌍문동에 실제했던 떡볶이 집 이름이 브라질 떡볶이였기 때문에 극 중에서도 그대로 브라질 떡볶이로 나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실제 촬영은 충남 서산의 한 오래된 분식집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응답하라 시리즈는 90년대, 80년대 등의 특정 시대를 배경으로 하여 당시 유행했던 옷과 음악 등이 나오기 때문에 그 시절에 대한 향수를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작품입니다. 1994, 1998 시리즈도 충분히 추억에 잠길 만한 내용들이 많지만 유독 1988 시리즈가 더욱 가슴에 와 닿는 이유는 요즘에 찾아보기 힘든 이웃사촌간의 정을 고스란히 표현했기 때문인 듯 합니다.

응답하라 1988 속 떡볶이 집.

3. 마치며

오늘 소개해 드린 영화와 TV 드라마는 모두 떡볶이라는 메뉴보다는 떡볶이집 이라는 장소에 좀 더 집중이 되어 있습니다. 두 작품은 각기 70년대, 8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10년이라는 시간 차이는 교복이나 옷차림에도 많은 변화를 주었습니다. 두 작품 모두 고등학생이 주인공이지만 응답하라 1988 은 교복자율화가 시행된 시기라서 여주인공은 사복을 입고, 남학생들은 교복을 입고 나오는 등 제각각이기에 일률적으로 교복을 착용해야 했던 70년대의 말죽거리 잔혹사와는 많이 다릅니다. 그렇지만 두 작품에는 떡볶이와 관련된 공통점이 있는데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등장하는 떡볶이집 이름은 얄개 떡볶이입니다. 그리고 응답하라 1988 에서 촬영한 떡볶이 집의 실제 이름은 얄개 분식입니다. 하필 오늘 소개해 드린 두 떡볶이집의 극 중 이름과 실제 촬영지의 이름이 모두 '얄개' 인 것이 재밌습니다. 극 중에서 학생들이 방과 후 들리는 장소로 학교 앞 분식집만한 곳이 없었고, 대표 메뉴인 떡볶이는 21세기인 지금도 야식으로, 안주로, 간식으로 사랑받고 있는 음식입니다. 요즘의 떡볶이는 더 이상 예전처럼 가볍게 먹을 수 있는 가격이 아니고, 가격이 오른 대신 맛의 종류와 토핑의 가짓수도 매우 다양해졌지만 가끔은 학생때 먹던, 토핑이나 사리 없는 평범한 떡볶이가 그립습니다.